/ / 2018. 10. 19. 21:12

28 (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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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는 작가,

정유정




술술 읽히는 문장, 탄탄한 스토리, 빠져드는 몰입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명입니다. 

소설 '28'은 가상의 도시 화양에서 펼쳐지는 28일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화양, 그곳에서 개와 인간이 함께 전염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이 발생합니다. 

치사율 100%의 이 전염병은 개에서 개에게로, 개에서 사람에게로, 살마에서 사람에게로, 사람에서 다시 개에게로 전염이 되면서 도시를 쑫개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병이 급속도로 확산되어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화양을 봉쇄하고 출입을 금합니다. 

언뜻보면 생존드라마일 것 같지만, 소설은 생존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은 다양한 사람들과 한 마리 개의 초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다섯명의 인물과 한 마리의 개는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위해 숨 가쁘게 달려가고, 그 이야기들은 한데 모여 실타래처럼 묶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28'은 시작합니다. 



과거 아디타로드를 달렸던 재형은 설원에서 늑대 떼를 만나 자신의 '쉬차'를 잃었습니다. 

그 일로 재형은 죄책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드림랜드를 운영하고, 링고의 복수를 저지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속죄라 볼 수 있습니다. 

개떼들에게 가족을 잃은 기준은 아내와 딸이 목숨을 잃은 그 장소로 달려가 무작정 개들을 차로 깔아뭉개고, 

그곳에서 마주친 링고와 스타를 향해 도끼를 휘두릅니다. 그리고 기준으로 인해 제짝을 잃은 링고는 기준을 향해 복수심의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기자인 윤주는 재형과 드림랜드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기사는 재형이 많은 것을 잃게 했으나, 윤주는 자신의 할 도리를 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기사의 바탕이 된 제보가 실상 잘못된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된 윤주는 재형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는 재형과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함께 살 게 된 윤주는 재형과 함꼐 같은 아픔을 겪게 된 것을 계기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개를 죽이기 시작했던 동해는, 

자신의 분노를 풀 대상을 개에게서 사람에게로 점차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그의 폭력적인 행동의 이면에는 가족의 외면과 사랑받지 못한 성장기가 있었습니다. 


간호사 수진은 '붉은 눈'이 화양을 집어 삼킬 때, 최전선에서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겐 가족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군대에 간 남동생, 그녀는 승산없는 싸움을 하며, 가족들에 대한 걱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다섯사람과 한마리의 개는 서로, 그 누구보다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이 여섯화자를 중심으로 결말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상황을

정유정 작가 특유의 필력으로 집중력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도 없고 책을 접을 수도 없게 만듭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화양은 불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적 배경은 겨울입니다. 

눈으로 뒤덮인 화양은, 그러나 그 어느때보다 불볕으로 끓어오릅니다. 

생존에 맞물린 긴박함과 얽히고 설킨 여섯개의 이야기로, 등장인물들의 감정선 또한 그렇습니다. 

차갑고, 서늘하며, 동시에 뜨겁습니다. 



정유정작가는 구제역이 유행할 때 아이디어를 착안했다고 합니다. 

그 것을 병의 원인이 반려견일때 인간들이 어떻게 대할까?라는 상상에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는 정유정 작가. 


책이 발간된 해가 2013년인데,

그 이후 2014년 세월호사건, 2015년 메르스감염병, 2016년 AI살처분 등 국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때,

우리가 처하게 될 나를 포함한 내 이웃이 행하게 될 모든 행동들을 미리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구제역이 발생하면 가축들을 살처분하고 AI 가 발생하면 조류들을 땅에 묻어 버리는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우리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출퇴근하는 버스에서 찔끔찔끔, 화장실에서 찔끔찔끔, 

마치 소설을 금지당한 고3수험생처럼 도둑질하듯 이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이라 그런지 '책 읽고 싶다!'라는 기분으로 기분좋게 읽어나갔던것 같습니다. 

오랜만의 책읽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는 모욕을 견딜 줄 아는 개였다. 인간의 표현으로 바꾸자면, 훈련이 잘 된 개였다."


"이 개는 당신의 '마리'야, 마리라는 이름을 붙여준 자가 바로 당신이라고, 그게 무슨 뜻인줄 알아? 책임진다는 거야. 편의에 따라 관계를 파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야"


"좀 전까지만 해도 새하얀 눈길로만 보였는데, 시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시선의 차이였다. 그것은 한 인간이 속한 세계의 차이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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