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8. 10. 14. 21:48

끌림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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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라고 탓하지 마세요. 

인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는 왜 이럴까..'라고 늘, 자기 자신한테 트집을 잡는 데,

문제가 있는 거에요.




#.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티베트 속담입니다. 

이 속담은 티베트의 칼날 같은 8월의 쨍한 햇빛을 닮아 있습니다. 

살을 파고들 것 만 같은 말입니다. 

내가 지금 걷는 이유는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올 것이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가요?

차마 이별하기에 그 길엔 사람이 너무 많았나요?

그 길은 너무 밝지 않았나요?

비 온 뒤라 길이 질척이지는 않았나요?

어려운 길이었나요?

잊지 못할 길이었나요?

내가 먼저 발걸음을 뗀 길이었나요?

당신이 그 길 위에 서서 오래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던 길이었던가요?

코 끝으로 작약꽃 향이 아스라이 스치고 지나갔던가요?

아니 그냥 향수였던가요?

아니면 나무 타는 냄새였던가요?

정녕 안녕이라고 말한 길이었나요?

한데 왜 나는 그 길 위에 다시 서서 당신을 부르는 걸 까요?


#. 끌림

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에게 직업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청년은 대답하기를, 자신의 직업은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파리 토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여행하는 게 일이라고 서슴없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여행 경비는 어떻게 버느냐고 했더니 틈틈이 막노동 일을 하면서 

그 수입으로 에펠 탑도 올라가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도 간다고 말했습니다. 

여행이라고 하기엔 뭣할 정도로 가는 곳엘 가고 또 가고 하는 사람. 

도대체 그가 에펠 탑에 오른 횟수는 얼마일까요?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 올라 파리를 향해

'사랑한다'고 외친 적은 몇번이던가요?

파리의 수 많은 장소와 거리,

또는 건물들은 정말 수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빛의 세기에 따라 바람의 결에 따라 한 번 와 닿았던 인상이 전부 다가 아닌, 

여러 얼굴을 가진 도시가 바로 파리입니다. 

수많은 표정을 매일매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그 일은 파리에 사는 사람들에게조차 일과가 되기도 합니다. 


나는 그 청년을 우연히 바스타유 광장 근처에서 마주친 적 있는데

내가 먼저 알아보고는 반가워 악수를 청했습니다. 

분수에 고인 물로 손을 씻고 있던 그가 얼른 바지춤에다 손을 닦았습니다. 

'여행 중이니?'

'살고 있는 중이지, 요즘 일이 없거든, 하지만 곧 떠날 거야.'

'어디로?'

'파리로!'


#. 사랑해라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된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 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우주를 바라보는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어쩌면, 세상을 껴안다가 문득 그를 껴안고,

당신 자신을 껴안는 착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 기분에 울컥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당신에게 많은 걸 쏟아놓을 것이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세상을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기적을 

당신은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동전을 듬뿍 넣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너무 아끼는 책을 보며 넘기다가,

그만 책장이 찢어져 난감한 상황이 찾아와도 그건 당신의 사랑이다. 

누군가 발로 찬 축구공에 맑은 하늘이 쨍하고 깨져버린다 해도, 

새로 산 옷에서 상표를 떼어내다가 옷 한 귀퉁이가 찢어져 버린다 해도 

그럴리 없겠지만 사랑으로 인해 다 휩쓸려 잃는다 해도 당신 사랑이다. 

내 것이라는데,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데

다 걸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 때문에 난 사랑하지 못하는가, 하고 생각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누구나, 언제나 하는 흔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잘하는 것 하나 없으면서 사랑조차도 못하는가. 

하고 자신을 못마땅해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흔한 것도 의무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다.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사람이다. 




사랑을 누구나, 언제나 할 수 있는 흔한 것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사랑을 상대방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사랑을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왜 저는 누구에도 감추고 싶었던 속에 있던 마음이 훤히 드러나보이는 기분이 드는 걸까요?

왜 그런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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